우리는 흔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함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사고에 따르면, 사랑은 그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즉, 진심 어린 사랑이라면 끝까지 싸워 함께하거나, 아니면 사랑하지 않기에 떠나는 것, 이 두 가지 선택지 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입장의 이면에는 실질적인 현실의 제약과 사랑은 무관하다는 '낭만주의적 이데올로기(ideology of romanticism)'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D.H. 로렌스가 언급했듯,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공원 벤치에서 평생을 잘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절대주의적 관점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낭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실질적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자녀 문제, 경제적 빈곤, 거주 국가의 차이, 정신 질환, 문화적 격차, 그리고 서로 다른 장기적 목표 등은 사랑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실제적인 차원(practical dimensions of life)'의 장애물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마음의 크기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나 지속적인 불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연속(succession of avoidable miseries)'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적 시각에서는 이를 사랑의 시험대로 보지만, 보다 절제된 철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고통 속에 가두는 행위가 아닌지 자문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상대방을 돌보고 양육하는 행위로 정의한다면, 우리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안겨줄 때 그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냉철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의 존재가 그들의 고통을 정당화할 만큼 유일무이한가?"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결국 상대의 성취가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닌가?"라는 지점입니다. 물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랑을 빙자하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무게를 아는 이들은 '체념의 제단(altars of resignation)' 위에서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상대와 함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분명 고귀하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상대의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를 온전히 놓아주는 것이야말로 '더 위대한 사랑(greater love still)'이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고집이 아닌, 상대의 삶을 존중하는 현실적인 배려가 동반될 때 사랑은 비로소 낭만주의적 환상을 넘어 성숙한 인간관계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