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기묘한 개념 중 하나는 '감정적 어려움이 신체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정신적인 고통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과연 신체 기관이 슬픔을 기억하거나, 손목이나 대퇴골이 부모의 징벌 혹은 고통스러운 이혼의 기억을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마음과 신체 사이의 밀접한 연결 고리와, 왜 감정이 신체적 통증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해 탐구합니다.
마음과 신체는 분리된 독립체가 아닙니다. 둘 사이에는 끊임없이 '감정적 교통(emotional traffic)'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슬플 때 그 슬픔의 일부는 어깨에 내려앉고, 공포를 느낄 때 상상 속의 두려움은 척추 아래쪽을 움켜쥐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 신체 기관들이 '웅변(eloquence)'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뇌는 입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심리적 상태는 '무의식적인 어둠(unconscious darkness)' 속에 깊이 잠겨 있습니다. 하물며 신체 기관은 자신의 심리적 자서전을 기록하는 데 훨씬 더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는 일종의 '양심(conscience)'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통로가 막혀 있다면, 신체는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강제로 경로를 우회합니다. 저자는 "신체적 통증은 무시하기 어렵고, 바로 그 점이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자신의 고통을 교묘하게 무시하거나 '낮은 수준의 우울증(low-level depression)'과 '만성적 불안(chronic anxiety)'을 외면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에, 결국 신체가 대신 나서게 됩니다. 마음이 감정적 태만을 지속할 때, 우리 몸은 '등 통증(backache)'과 같은 증상을 통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알려옵니다.
위장이나 신장은 마음이 침묵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대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체적 증상은 '언어적 경로(linguistic road)'를 찾지 못한 고통들이 밖으로 표출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신체는 단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만을 보낼 뿐,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해석해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선별하고(sifting), 회상하며(recollecting), 애도하고(mourning), 해석하는(interpreting)' 작업은 오롯이 마음의 몫입니다. 우리의 신체는 고통스럽게나마 우리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기억해주는 '말 없는 역사가(mute historians)'이자 '서투른 역사가(inarticulate historians)'입니다.
우리가 '배경 트라우마(background traumas)'를 의식적으로 더 많이 이해할수록, 신체는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을 덜 나타내게 됩니다. 더 많이 말하고 표현할수록, 신체를 통해 증상화(symptomize)할 필요는 줄어듭니다. 신체로부터 기억의 짐을 덜어내어 우리가 스스로 그 고통을 마주하고 해석할 때, 비로소 신체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대신 간직해야 하는 역할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