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관계 속에서 그 애정이 실현될 때 도망치려는 모순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방에 들어설 때마다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을 보일 때, 우리는 오히려 'nauseous(메스꺼움)'을 느끼거나 관계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는 반직관적인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이러한 정서적 회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식'에 대한 비유가 유용합니다. 어린 시절 극도로 제한된 식단 속에서 자란 사람은 'to need nearly nothing(거의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이들에게 생존이란 곧 결핍에 적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풍족한 식탁이 차려지면, 이들의 소화기관은 그 풍요로움을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느끼며 병이 나기도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가정 내에서 'affection was severely rationed(애정이 엄격하게 배급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따라서 파트너가 우리의 일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 'cared for(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suffocated(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때 우리는 'wanted(원함을 받는)' 느낌 대신 'trapped(덫에 걸린)' 느낌을 받으며, 진심 어린 칭찬 앞에서도 만족보다는 'inadequacy(부적절함, 자격지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불편함은 악함의 징후가 아니라, 'melancholy upbringing(우울한 성장 배경)'이 남긴 정서적 결핍의 유산입니다. 이를 스스로 인정할 때, 우리는 파트너에게 우리의 상태를 설명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가장 친절한 방식은 상대가 우리에게 'not to be too kind(너무 친절하지 않는 것)', 혹은 'not too soon(너무 서두르지 않는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보다 'in very small doses(아주 적은 용량으로)', 즉 'teaspoon(티스푼)'으로 나누어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옹의 횟수를 조절하고, 칭찬 사이의 간격을 두는 방식은 상대방이 우리의 회피적 성향을 'commitment phobia(헌신 공포증)'나 'fear of intimacy(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와 같은 부정적인 용어로 오해하고 분노하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결국 우리가 이러한 회피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과거의 정서적 결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logical and intelligent adaptation(논리적이고 지적인 적응)'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결코 우리의 인격적 결함이나 병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가 왜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지 그 근원을 이해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신중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점이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의 생존 기제였던 경계심이 이제는 'outlived its uses(그 쓸모를 다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치유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상호적인 사랑의 'ecstasy and plenitude(황홀함과 풍요로움)'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