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진실에 대한 갈망(appetite for the truth)'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지속하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하고 여러 '환상(illusions)'을 삼켜야만 합니다. 이러한 눈멀음은 우리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필수적인 장치입니다. 본문에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혹은 스스로 눈감아야 하는 몇 가지 '맹점(blind spots)'을 살펴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죽지 않을 것처럼(not going to die)' 행동해야 합니다. 수백 년 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익한 찌꺼기(incomprehensible futile mulch)'로 남을 일들에 대해, 지금 당장 그것이 매우 중요하고 긴급하다고 믿어야만 삶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허무를 직시하는 대신, 우리는 일시적인 성취에 집착함으로써 삶의 동력을 얻습니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거의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광적으로 신경 써야(care manically)' 합니다. 또한, 실제로는 거의 보장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이해받을 수 있을 것(loved and understood)'이라는 환상을 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기대는 우리가 고립감을 견디게 하는 보호막이 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귀여움에 '녹아내려야(melt)' 하지만, 사실 그 아이들이 성장한 미래의 세상은 우리가 가르치는 것처럼 이상적인 곳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를 기대해야(look forward to the future)'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운명이 우리에게 무엇을 예비하고 있는지 미리 알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의 매일이 6점 이하의 평범한 날(scratchy six or below)'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가올 날들에 대해 흥분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 전체가 발전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지만, 실상은 '모든 발명품이 끔찍한 의도치 않은 결과(appalling unintended consequences)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외면해야 합니다. 또한, 가까이서 보면 대부분 '견딜 수 없는(insufferable)' 존재들인 인류를 사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인류애는 때때로 사실과 거리가 멀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신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흥분(excited)'해야 하지만, 사실 그 물건들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고, 친구들을 만나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친구들의 솔직한 속마음을 듣는다면 우리는 '짓눌려버릴(crushed)' 것이기에,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환상 속에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고통과 통증, 카테터(agony, aches and catheters)'로 점철될 노후를 대비하면서도, 편안하고 지혜로운 노년을 꿈꾸는 것은 삶을 버티게 하는 필수적인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회로 가득 찼는지조차 때로는 제대로 인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흥분과 후회로 인해 미쳐버릴(mad from excitement and regret)'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진실을 전부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making it out of bed)'의 진실만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진정한 자기 인식의 불편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인생을 가장 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때때로 스스로를 '유익하게 속이는 데 능숙한(masters at fruitfully lying to themselves)'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가장 풍요롭게 영위하는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