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놀라운 역설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세상에 대한 지식이 넓어질수록, 오히려 우리는 아주 작고 극적이지 않은 것들에 더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다크 초콜릿 한 조각', '출근길의 산책', '1월 정원에 돋아난 새싹', '아무런 의무가 없는 주말'과 같은 소소한 것들은 나이가 들수록 그 가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젊은 시절 우리는 '거대한 규모(scale)'와 '외적인 흥분(outward excitement)'을 끊임없이 갈구합니다. 세상을 호령하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완벽한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웅장한 장소에서도 금세 지루함을 느끼고, 삶의 가장 거대한 미스터리조차 당연한 듯 무심하게 지나치곤 합니다. 우리는 길가에 멈춰 서서 사유하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을 좀처럼 배우지 못합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결정적인 지점에는 언제나 '고통(pain)'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아픔(love sickness)', '내분(infighting)', '타협하지 않는 고집(intransigence)', '정치적 격변(political turmoil)'과 같은 삶의 난관을 겪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화려하지 않지만 순수하고 희망적인 것들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무화과 한 알'이나 '고요한 순간', '자극적이지 않지만 다정한 친구'를 존중하게 되는 이유는, 사실 그 이면에 '밤새 흘린 눈물', '끝없는 논쟁으로 잃어버린 시간', '어둠 속 욕실에서 느꼈던 절망(untrammelled despair)'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삶의 어려움은 우리가 '정원 가꾸기', '가을 호수를 그린 그림', '오리의 생애 주기', '목성의 위성에 관한 기사'와 같은 작고 사소한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촉매제가 됩니다. '치매(dementia)', '암(cancer)', '이혼(divorce)', '정신병원(mental institutions)' 등 삶의 어두운 이면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야말로 '꽃이 피어나는 모습', '아무 일도 없는 하루', '기차 여행', '따뜻한 저녁 집 위로 떠오른 달'을 진정으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됩니다.
다섯 살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은 그저 흔한 간식일 뿐이지만, 그 곁에 앉은 조부모에게는 모든 것이 '초자연적(supernatural)'으로 보입니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 부모가 된 자식이 차에 짐을 싣는 모습, 나무 위의 새 소리 하나하나가 이들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의 '취약성(fragility)'이나 '배후에 도사린 잔인함(cruelty waiting in the wings)'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주는 단순한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단순한 경이로움은 끊임없이 재발견됩니다. 그리고 그 발견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삶의 '지옥의 복도(corridors of hell)'를 통과해야만 했던 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