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주저하곤 합니다. 그 배경에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파괴적인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괜찮은 사람이라면 이미 필요한 모든 친구를 다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정말 슬프고 무능력한 사람만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갈구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재능 있고 흥미롭거나 좋은 사람들은 이미 그들만의 'gang(무리)'을 형성하고 있어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이러한 'punishing idea(처벌과도 같은 생각)'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고독과 환멸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ongoing and universal possibility(지속적이고 보편적인 가능성)'라는 점입니다. 매력적인 배우, 유명한 생물학자,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조차도 대중 속에 둘러싸여 있을지언정 사실은 'lonely(외로운)' 상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파티 구석에서 활기차게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며 그들은 이미 완벽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들 역시 내면의 공허함이나 인간관계의 갈증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이들이 학교나 직장에서 'congenial spirits(마음이 맞는 사람들)'를 찾지 못해 저녁 시간을 홀로 보냅니다. 이는 그 사람이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적절한 인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고독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조차도 누군가 현명하고 다정하며 재미있는 새로운 친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 역시 우리와 같은 결핍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modest part of our minds(우리 마음속의 겸손한 부분)'가 고립을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해석하게 내버려 둡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vanquish(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cold and guarded society(차갑고 경계심 가득한 사회)'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거짓임을 알고 있는 가설을 진실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contravening the moral of our own lives(우리 삶의 교훈을 거스르는 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 사회적 서클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우리가 새로 만날 사람의 서클 또한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 삶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흥미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용기를 내어 'say hello(인사를 건네는 것)'를 실천해야 합니다. 상대방도 우리만큼이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