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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현대의 합리주의를 넘어선 존재로의 초대]-[Episode #215 ... How Mysticism is missing in our modern lives. (Critchley, Heidegger)]

Philosophize This! · C1 ·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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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신비주의: 현대의 합리주의를 넘어선 존재로의 초대

서론: 의지의 자유에서 의지로부터의 자유로

스티븐 웨스트(Stephen West)는 하이데거의 후기 철학을 인용하며, 현대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주체와 객체'의 틀로 규정하고, 대상을 조작하고 최적화하려는 '의지의 자유(freedom of the will)'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의지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will)' 혹은 '내버려 둠(releasement, Gelassenheit)'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고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신비주의에 대한 오해와 재발견

현대 사회에서 '신비주의(mysticism)'는 종종 비합리적이거나 망상적인 것으로 치부됩니다. 사이먼 크리칠리(Simon Critchley)의 저서 On Mysticism을 바탕으로 웨스트는 이러한 편견을 반박합니다. 역사적으로 신비주의자들은 합리성을 거부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고도로 훈련된 이성적 수행—성경을 깊이 연구하거나, 명상하고, 기도하는 등—을 통해 신비적 체험에 도달했습니다. '신비주의자'라는 명칭 자체가 18세기 칸트 이후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이들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신비적 체험의 본질: 자아의 해체와 합일

신비주의적 체험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첫째는 자아를 초월하여 신이나 더 큰 전체와 합일감을 느끼는 것이며, 둘째는 자아 자체가 녹아내리며 세상과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단순한 종교적 도피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덧씌우는 '필터'를 제거하고 존재의 본질을 직접 마주하는 경이로운 순간입니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주관적 변형은 그 자체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실재입니다.

현대인이 신비주의적 통찰에 접근하는 방법

현대인은 자아에 대한 집착과 끊임없는 정보 과부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크리칠리는 이를 '엑스터시의 퇴위(the abdication of ecstasy)'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더 다양한 접근 경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예술과 시(Poetry): 루미(Rumi)의 시처럼, 일상 언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존재의 충만함을 표현하는 예술은 이성적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합니다.
  2. 음악(Music): 음악에 몰입하는 과정은 자아를 내려놓는 일종의 신비적 체험과 유사한 기제를 제공합니다.
  3. 철학적 텍스트의 깊은 독해: 철학을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닌, 자신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겸손한 수행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내버려 둠'의 상태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결론: 작은 변화로부터의 시작

신비주의적 체험은 단번에 일어나는 거창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상, 자연과의 교감, 깊은 독서 등을 통해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의지로부터의 자유'의 연습입니다. 우리는 현대 사회의 합리주의적 틀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좁은 시야를 깨닫고, 그 너머에 있는 더 풍요로운 존재의 차원을 탐색할 권리가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인이 상실한 '존재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철학적 도구입니다.

🎯Key Sentences

1
Is it possible to think without the will?
의지 없이 사고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2
Let's talk more about what that might look like.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좀 더 이야기해 볼까요?
3
Let's structure things.
체계적으로 정리해 봅시다.
4
Well, first of all, real question, should this person have to apologize for spending their time in this way?
우선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 하죠. 이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썼다는 이유로 사과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5
In other words, is this just a poorly disguised move of a selfish person who's ignoring all the really important work we have to do of projecting ourselves onto the world and fixing it?
다시 말해, 이건 우리가 세상에 우리 자신을 투영하고 바로잡아야 할 정말 중요한 과업들을 모두 외면한 채, 이기적인 사람이 그저 얄팍하게 포장한 꼼수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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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Phrases

1
wrap one's head around
이해하다
2
low-hanging fruit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성과
3
clear the air
오해를 풀다
4
steer into
받아들이다
5
frame of reference
참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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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cript

Hello everyone. I'm Stephen West.
This is Philosophize This.
Thank you to everyone who supports the podcast on Patreon, patreon .com slash Philosophize This.
So please listen to at least the last episode before this one, but a couple episodes ago, I brought up Heidiger in relation to Nietzsche, and I said that a classic Heidiger -style question that really shows the differences between him and Nietzsche is that he asks, Is it possible to think without the will?
Meaning, is it a part of our thinking, to not only be able to have freedom of the will, to be able to will yourself on to situations when you choose to, but beyond freedom of the will, is there also a freedom from the will that's an important part of our thinking as well?
Now what this question refers to is Heidiger's later work, after being in time, after dauzein, after showing the limitations of only framing things in terms of subjects and objects, willing ourselves onto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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