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계에서 우리는 친구나 가족에게 파트너가 **'친밀감을 두려워한다(afraid of intimacy)'**고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우리는 파트너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don't often talk of their emotions)', '신체적 친밀함을 어려워하며(find it hard to be physically cozy)', 좀처럼 울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반면,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유창한(emotionally fluent)' 사람이라 여기며, 우리는 파트너와 달리 진심으로 사랑을 원하고 감정을 공유할 준비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파트너를 선택할 때 강요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을 완전히 뜨고(eyes fully open)', 수많은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그들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친밀감에 대한 갈망(cries for intimacy)'**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친밀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을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말하는 욕구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는 친밀감을 정말로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친밀감을 거부하는 사람을 골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친밀감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일상에서는 파트너를 **'무능하고 차갑다(incompetent or frigid)'**고 비난하거나, **'멍청이(blockhead)'**라고 모욕하는 '짜증스럽고 멸시하는(irritable, belittling)' 행동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박해적인 방식(persecutory ways)'**으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신뢰와 연결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다정함을 얻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방식(굴욕적인 방식)으로 친밀감을 갈구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성숙한 관계를 위해 우리는 이제껏 애써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친밀감을 두려워하며(scared of intimacy)', 오히려 친밀감이 부재한 상태를 편안하게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상호 항복(mutual surrender)'**의 기쁨과 공포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악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경계심과 의심(guardedness and suspicion)'**을 갖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친밀감으로 가는 길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내면의 문제를 상대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와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우리는 파트너와 똑같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트너와 **'훨씬 더 많은 공통점(far more in common)'**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오랫동안 회피해 왔던 연민과 다정함을 비로소 관계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